지은이: 최진석
제목을 봐서는 일반적인 산문, 수필 등과 같은 책으로 생각되었으나, 막상 책을 펼치니 반야심경에 대해 이야기한 책이었다.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경전이라 거부감 없이 읽기를 시작하였다.
260자 밖에 안되는 경전이라니...
부처님의 고삐는 세상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인데, 나의 고삐는 무엇인가?
반야심경은 거칠게 축약하지만 "항상 익숙한 이곳에서 새로운 저곳으로 건너가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은 "무엇도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성질을 근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원래 그러한 성질인 것은 없다"라는 말이다. 본무자성이라는 말을 기호로 나타낸 것이 공이다.
무엇도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성질을 근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 없는 것에서 무언가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인연에 따라 잠시 관계를 맺고 얽혀 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인연생기.
부처님 말씀: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세개고 오당안지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 과거, 현재, 미래로 펼쳐진 온 세상이 고통이니, 내가 그 고통을 해결하겠다.
부처님의 고삐는 고통스러운 세상에 갇혀 고통받는 대중을 구제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사람은 두 층위로 나뉜다.
바라밀다는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이다. 몸소 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손으로 둥근 공을 하나 잡습니다. 색온은 둥근 공, 물건 그 자체입니다. 매끄럽고 말랑말랑한 느낌이 수온입니다. 이전의 경험과 기억의 연합으로 그것을 가지고 노는 공이라고 떠올리는 것이 상온입니다. 말랑말랑하므로 조물거리거나, 그 공으로 같이 놀 친구를 찾는 일이 행온입니다. 내가 손에 무언가를 잡았음을 아는 것이 식온입니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넘어지면 일어나고, ... 이 반복의 과정이 자유이고 행복이면 또 건너가기 입니다.
세계의 모든 것이 변하고, 세계에 '나'라 할 만한 것이 없으며, 그러니 온갖 번뇌와 분별을 소멸시켜야 한다.
세계는 고통의 바다이고,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나는 것을 해탈이라 합니다. 해탈한 그 상태를 열반이라 하고요. 열반에 이르지 못한 채, 고통의 바다에서 계속 돌고 도는 것을 윤회라 합니다.
무가애고 무유공포: 마음에 걸림이 없으니 두려움이 없다.
우리가 어떤 것이든, 경전을 읽을 때면 무엇보다 먼저 열등감을 느껴야만 합니다. 질투를 느껴야만 합니다.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한 명의 인간이 서른 다섯의 나이에 깨달음을 얻고서 남긴 부산물의 기록을 이리 만지고 저리 만지고 주섬주섬하고 ....
붓다가 설법한 주제는 딱 하나입니다. 우리 각자가 붓다가 되어, 붓다의 마음을 품고, 붓다의 눈으로 세상을 관조하고, 붓다의 수준으로 사는 것이 붓다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에서 건너느니라.
사리자여!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수 상 행 식도 그러하니라.
사리자여! 모든 법은 공하여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그러므로 공 가운데는 색이 없고
수, 상, 행, 식도 없으며,
안, 이, 비, 설, 신, 의도 없고,
색, 성, 향, 미, 촉, 법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고,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
고 집 멸 도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최상의 깨달음을 얻느니라.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하고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지니라.
이제 반야바라밀다주를 말하리라.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3번)
[책] 하면된다 퀀트 투자 - 강환국 (0) | 2021.12.15 |
---|